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남도 창원(昌原) 사람이다.
1919년 3월 3일 서울의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 이를 군중에게 배부하였다. 서울의 독립만세운동 계획이 무르익던 2월 23일, 이갑성(李甲成)이 만산에 내려와 이곳 기독교계의 유지인 이상소(李相召)·임학찬(林學瓚) 등을 만나 경남지방의 민족대표로서 서명 날인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실패하고 이튿날 상경하였다.
2월 26일 이갑성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배동석(裵東奭)을 다시 마산에 파견하여 서명 날인을 권하였으나 또다시 실패하였다. 이처럼 마산지방의 협조가 부족한 가운데 서울에서의 대대적인 독립선언식과 독립만세운동이 있은 직후인 3월 2일, 이갑성·임학찬·이형재(李瀅宰) 등을 통하여 그에게 30여매의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그는 이튿날 이것을 무학산(舞鶴山)에서 군중에게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236·237·23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집 121·125·14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23·157·160·173·1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