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평안남도 평양(平壤) 사람으로 기독교(基督敎)인이다.
1919년 3월 10일의 서흥군 도면 능리(瑞興郡道面陵里) 장날을 이용하여, 박이도(朴履道)·원용팔(元用八)·원용목(元用睦)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는 도면 두무리(杜茂里)교회의 전도사로서, 평양에 가서 윤종식(尹宗植)으로부터 독립선언서 10여매를 받아가지고 돌아와 교회에 전달하고, 박이도·원용목·원용팔 등과 연락하여, 능리 장날인 3월 10일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일본 헌병대에 의해서 이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이해 6월 1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21년 1월 10일 잔인한 고문의 여독으로 상처가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8일만에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646·64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259·26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