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유기문은 1930년 개성(開城) 송도고등보통학교(松都高等普通學校)를 졸업하고 중국 북경(北京)으로 건너가 친형인 유기석(柳基石)의 영향을 받아 무정부주의 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4월 중국 상해(上海)에서 유기석, 유자명(柳子明), 장도선(張道善), 정해리(鄭海理) 등이 무정부주의 신사회(新社會) 건설을 목적으로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을 조직하자 본 연맹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31년 11월 상해 프랑스 조계 포석로(鋪石路)의 백정기(白貞基) 숙소에서 무정부주의자의 무력 투쟁단체이자 남화한인청년연맹의 행동 단체인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을 결성할 때 핵심 단원으로 가담하여 항일 무력활동을 전개하였다. 흑색공포단의 주요 활동은 천진(天津) 폭탄 의거와 육삼정(六三亭) 의거, 변절자에 대한 숙청 등이었다. 1932년 10월 유기석은 유자명 등과 운동자금 모집 방법을 협의한 후 북경으로 가서 폭탄을 입수하는 등 제반 준비를 갖춰 천진으로 돌아왔다. 동년 12월 16일 전이방(田理芳)은 천진 주재 일본총영사관 관저에 폭탄을 던져 건조물의 일부를 파괴하고, 유기문은 프랑스 조계 부두에 정박 중인 일본 기선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폭탄의 위력이 크지 않아 큰 손해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의 활동과 더불어 1932년 의열투쟁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1935년 7월 흑색공포단원 엄순봉(嚴舜奉), 이규호(李圭虎) 등이 친일 조선인 상해거류민회장 이용로(李容魯)를 암살한 사건으로 구속되자, 이와 관련하여 유기문 외 14명이 불구속으로 모두 17명이 경성지방법원으로 송치되었다. 이때 상해 거주자인 유기문 등은 폭발물 취체 벌칙 제1조 제9조, 치안유지법 위반에 해당하나 소재불명(所在不明)으로 기소 중지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重要犯罪報告(종로경찰서, 1935. 7. 8, 독립기념관 소장)
- 京高特秘 제1120호, 無政府主義者 李容俊 取調의 건(1939. 4. 27)
- 思想彙報(朝鮮總督府 高等法院 檢事局 思想部) 제5호
- 在上海南華韓人靑年聯盟의 綱領 規約 及 宣言(1935. 11. 30)
- 最近에 在支 不逞朝鮮人의 策動狀況에 관한 건(1942. 3. 3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권, 781~782면
- 上海 元民會 副會長 李容魯 暗殺事件 檢擧 送局의 件(종로경찰서, 1935. 7. 24, 독립기념관 소장)
- 조선중앙일보(1935.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