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정주(定州) 사람이다.
1921년 오산(五山)중학교 재학중 개혁공보(改革公報)를 발행하는 등 항일운동을 시작한 이후 교육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1927년 만주로 건너가 흥경(興京)지방에서 덕성(德成)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정의부(正義府)에 가입하였으며, 양세봉(梁世奉)·김학규(金學奎)의 부대에서 소대장으로 활약하였다.
1928년 11월 14일 '남만주청년총동맹'을 조직하는 등 계속 활동하다가 봉천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되었으며, 1년여 동안 옥고를 치른 끝에 기소유예로 출옥하였다.
1936년에 다시 북지(北支)로 건너갔으며, 1942년 8월 광복군의 간부가 된 김학규와 연락이 되어 화북지구(華北地區)의 지하조직과 초모(招募)공작에 전념하였고, 1943년에는 배경진(裵京鎭)·김광언(金光彦) 등과 화북지구 한국독립당을 조직하고, 일군의 기밀을 탐지하는 등 광복군 소속으로 활동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광복후인 1945년 9월 9일에는 임시정부 화북대표부 주석 조 강(趙剛)의 비서로 임명되어 교민을 선무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1921. 7. 6, 1928. 10. 30,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