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1941년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대원으로 활동하다 병사 순국하였다.
서울에서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을 다니던 엽홍덕은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뜻을 품고 1930년대 초 중국으로 망명하여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 당시 의열단은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으며 남경(南京)에 본거지를 두고 단원들을 중앙군관학교(中央軍官學校)에 입교시켜 항일투사를 배출하고 있었다.
중앙군관학교 졸업 후 그는 김원봉(金元鳳)이 주도 결성한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에 가입하였다.
그후 엽홍덕은 민족혁명당이 주도한 1937년 7월 조선민족전선연맹(朝鮮民族戰線聯盟), 이어 1938년 10월 10일 이 연맹 산하의 무력단체로 조직된 조선의용대에 합류하였다.
중일전쟁의 기세가 더욱 확대되는 가운데 1940년 말 조선의용대는 확대 간부회의를 개최하여 화북진출을 결정하였다. 이는 화북진출은 화북지방의 일본군 점령지역에 한국인 이주동포가 많이 살고 있었으므로 그곳에서 공작활동을 전개하고 국내 및 만주지방과 연락을 취하려는 목적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엽홍덕은 1941년 조선의용대의 화북진출에 참가하여 북상도중 낙양(洛陽)에서 병을 얻어 순국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義勇隊通訊(1942. 3月) 第41期 23面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叢書(獨立紀念館 韓國獨立運動史硏究所) 第2輯 357面
- 思想情勢視察報告集(社會問題資料硏究會編) 第2輯 263面
- 海外의 韓國獨立運動史料(國家報勳處) 第8輯 54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