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황해도 신천(信川) 사람이다.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동생 안공근(安恭根)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여 그의 부친과 함께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1931년 그의 부친 안공근이 김구(金九)와 함께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을 조직하고 이봉창(李奉昌) 의사의 거사 등 특무공작활동에 관여하자, 이봉창 의사가 일본으로 출발하기 직전 침구를 건네받아 이를 김구에게 전달하였다.
또한 1934년 봄 김구가 한국과 중국간에 국제적 연대를 형성하여 독자적인 투쟁역량을 강화해 나가기 위해 중국 국민당정부 장개석(蔣介石)의 후원하에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의 중앙육군군관학교(中央陸軍軍官學校) 낙양분교 내에 한인특별반을 조직하고, 낙양군군관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12월 하순에 한국특무대독립군(韓國特務隊獨立軍)을 조직하자, 그의 부친과 함께 특무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한인애국단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1934년 4월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거사 직전 자신의 집에서 '태극기를 배경으로 양손에 폭탄을 들고 가슴에 선서문을 건 윤봉길 의사의 사진'을 촬영하였고, 또 유상근(柳相根)·최흥식(崔興植) 의사의 거사 출발 전에도 기념촬영을 담당하였으며, 이덕주(李德柱)·유진만(兪鎭萬) 의사의 파견시에는 권총과 탄환 은닉방법을 고안하여 이를 휴대케 하는 등 김구의 특무활동 초기부터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 후 1938년 11월 28일 중국 상해에서 항일 투쟁을 위한 특무공작을 전개하다가 상해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붙잡혀 국내 인천으로 압송되었다.
1940년 5월 24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05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832면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동아일보(1938. 12. 1)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628·6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