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을사오조약 (乙巳五條約) 이 체결 (締結) 되자 반대상소 (反對上疏) 로 항쟁 (抗爭) 하다 피체 (被逮) 되어 구금 (拘禁) 당하였고 1907년 경기도 (京畿道) 연천 (蓮川) 에서 허위 (許蔿) 와 함께 의병활동 (義兵活動) 을 폈으며 1912년 만주 (滿洲) 길림성 (吉林省) 통화현 (通化縣) 에서 중어학원 (中語學院) 을 개설 (開設) 하여 구국교육 (救國敎育) 에 힘쓰고 동년 (同年) 재만 (在滿) 동포 (同胞) 들의 자치기관 (自治機關) 으로 부민단 (扶民團) 을 조직 (組織) 하고 단장 (團長) 으로 활동 (活動) 하면서 신흥강습소 (新興講習所) 를 운영 (運營) 하는등 남만주 지역 (南滿洲地域) 의 독립운동기지화 (獨立運動基地化) 에 기여 (寄與)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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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허겸은 의병대장 허위(許蔿)의 형으로 경상북도 선산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늑결되자 반대상소를 올렸으며 적극 반대 의지를 관철하기 위하여 을사오적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다가 일경에 탐지되어 체포되었다.
그후 동지 4백여 명을 규합하여 경기도 연천(漣川) 등지에서 거의하여 활약하였다.
1912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김동삼(金東三)·유인식(柳寅植) 등과 함께 중어학원(中語學院)을 개설하여 한중 친선 및 한족의 이익을 도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합화현(哈化縣)에서 부민단(扶民團)을 조직하여 초대 단장에 취임하였는데, 이 단체는 남만주 일대에 이주한 개척농민의 자치기관으로서 애족(愛族)·구국운동 등의 사업을 전개하여 음으로 양으로 광복운동에 기여한 바 컸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기려수필 83면
- 박은식전서(상) 294면
- 폭도편책 3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0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