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경북 영덕(盈德) 사람이다.
1919년 3월 8일 오후 3시경 대구(大邱) 계성학교(啓聖學校) 재학생으로서 이만집(李萬集) 등이 주동한 대구시민 독립운동시위에 참가하여 독립선언문(獨立宣言文)을 배포하고 시위하다가 붙잡혔다.
동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을 받았다.
1942년에는 충북 괴산군(槐山郡) 연풍면(延豊面) 연풍교회(延豊敎會) 목사로서 설교를 통하여 항일사상을 고취하였다. 또한 일제의 신사참배(神社參拜) 강요를 반대하는 등 항일투쟁을 하다가 소위 안녕질서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붙잡혔다.
1943년 9월 13일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청(忠州支廳)에서 징역 10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6월 4일 대전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4. 18 대구지방법원)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대전형무소 사망진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