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0년 5월 이래 함북 회령군에 대한민국임시정부 함경북도독판부를 재건하기 위해 간도 국민회와 협의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5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내무부 특파원 안정근(安定根)·왕덕삼(王德三)을 간도로 파견하여 간도에 총판부를 설치하고, 회령에 함경북도독판부(咸鏡北道督辦府)를 재건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안정근 등은 길림성 화룡현(和龍縣)의 국민회(國民會) 통신부장 박용훈(朴龍勳)을 만나 회령에 함북독판부를 설치하고 간도에 총판부(總辦府)를 설치하여 총괄하게 하였다.
한편, 1920년 5월 이래 함북 회령군(會寧郡)에서 동지 18명과 함께 독립문서 배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고 있던 나성호는 7월 최방연(崔枋衍)·정희용(鄭熙鎔)·허익근(許益根) 등과 회령에 간도 국민회 지회를 설치할 것을 논의하고 오순준(吳舜濬, 이명 오순예)을 지회장으로 선임하여 간도로 파견하였다. 화룡현에서 박용훈이 오순준에게 함북독판부 설치를 권유하자, 회령으로 돌아온 오순준은 이를 나성호·정희용 등에게 전달하여 함북독판부 임원을 선정하였다. 임원 선정후 나성호·정희용은 간도 국민회 본부로 건너가 안정근을 만나 함북독판부 설치와 제반 활동계획에 관해 협의하고 돌아왔다. 그 후 나성호 등은 폭탄을 밀반입하여 회령지역 관청과 은행 등 일제 주요기관 파괴와 친일파 처단을 위해 총기와 탄약 확보, 군자금 모집하다가 1920년 12월경 회령경찰서와 함경북도경찰부에 의해 체포되었다.
1921년 11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소위 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폭발물취체벌칙 위반·총포화약류취체령시행규칙 위반으로 징역 3년 6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2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다 1924년 8월 27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新聞(1921. 11. 26)
- 聯通制 改正組織의 企劃發見檢擧(1921. 2. 7)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3)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2. 2. 27)
- 刑事控訴事件簿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1. 9. 25, 9. 26, 9. 27, 11. 18, 1922. 2. 18)
- 聯通制 改正組織의 企劃發見檢擧(1921. 2. 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上海假政府 3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1968) 資料 2 臨政篇 ⅱ 155~158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7) 제2권 131~133면
- 高等警察關係年表(朝鮮總督府警務局, 1930) 51~5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제9집 289~293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4권 271~27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