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경상북도 대구(大邱)에서 태어났다. 일명 최진(崔震)이다.
1909년 안희제(安熙濟)·남형우(南亨祐)·이원식(李元植)·이수영(李遂榮)·이시열(李時說)·배천택(裵天澤)·김동삼(金東三)·서상일(徐相日)·신백우(申伯雨)·윤세복(尹世復) 등 8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신민회(新民會) 계열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비밀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하여 지하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 참가하고, 임시정부의 지시에 의하여 만주 봉천성(奉天省) 유하현(柳河縣)으로 가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창립에 참가했다가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1919년 12월 일시 귀국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했다. 1920년 6월 다시 중국 북경(北京)으로 가서 배천택(裵天澤)의 권유에 따라 북경 군사통일회의(北京軍事統一會議)에 참가하고, 김원봉(金元鳳)을 중심으로 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만주 중국과 국내를 연결하면서 활동했다.
1922년 9월 다시 국내에 잠입하여 만주로부터는 일제 식민지 통치기관을 폭파하기 위한 무기와 폭탄을 반입하고 국내에서는 군자금을 모집하여 만주로 발송하기 위해 이수영(李遂榮)·송두환(宋斗煥)·정동석(鄭東錫)·정내영(鄭騋永)·김봉규(金鳳奎)·정두규(鄭斗奎)·노기용(盧企容)·정두은(鄭斗殷) 등과 경상북도 지방에서 군자금을 모집한 이른바 제2경북사건(第二慶北事件)으로 1924년에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출옥 후 다시 중국에 망명하여 운남무관학교(雲南武官學校)를 졸업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91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91면
- 동아일보 1924. 11. 7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250 251 849 853 854 855 856 859 860면
- 고등경찰요사 3 223 224 226면
- 재판문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44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