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북도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9년 3월 22일 임북면 사월동(臨北面沙月洞)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이곳은 전날 3월 21일 인근의 임동면 편항(臨東面鞭巷)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3천여명의 시위군중이 격렬한 만세운동을 전개하여 이미 고조된 분위기였다. 이에 그는 편항 장날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던 권태환(權泰煥)·권영석(權寧奭)·권오규(權五奎)·천치락(千致洛)·김일선(金日先)·천점백(千占伯)·배방우(裵方于)·이응팔(李應八) 등 4백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이날 오후 2시경, 사월동에 있는 임북면 면사무소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때 그는 시위군중의 선두에서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면사무소 건물과 숙소건물 2동을 파괴하고, 서류와 비품을 파기하는 등 오후 5시경까지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자진 해산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검거에 따라 체포되었으며, 결국 이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40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347·1348·1351·135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