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1909년 3월 국권 회복과 독립군기지(獨立軍基地) 개척을 준비하고 있던 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활동을 포착한 일제는 1910년 12월 소위 ''안명근사건(安明根事件)''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사건을 확대 날조하여 신민회 간부들을 검거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911년 1월 ''안악사건(安岳事件)''과 ''양기탁(梁起鐸) 등 보안법위반 사건''을 조작하여 신민회의 관련 고위핵심간부를 체포하는데 성공한 일제는 신민회의 나머지 애국지사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일제의 조선총독 사내정의(寺內正毅)가 1910년 12월 압록강 철교 개통식에 참석하고 철로편으로 서순(西巡)하는 기회를 포착하여 신민회 회원들이 사내정의의 암살을 기도했다는 이른바 사내정의총독 암살미수사건(또는 105인 사건)을 또다시 조작하여 1911년 9월 신민회의 회원을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05인 사건에 연루된 김순도 역시 동년 9월 붙잡혀 1년여 동안 일경의 악형과 잔혹한 고문을 당하는 등 옥고를 치른 끝에 석방되었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남만주·상해(上海)·광동(廣東) 등지를 옮겨 다니며 민족운동을 전개하던 김순도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조직되자, 투신하여 임시정부 요인의 신변을 보호하는 한편 중국 상해지역 청년 동지들의 자모(慈母)로 활동하며 그들의 생활을 돌보아 주었다.
또한 항일독립문서 배포를 통해 한인교포들의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항일독립투쟁에 필요한 무기를 운반하는 등 독립운동 일선에서 활동하였다.
그 후 중국 광동에서 황포군관학교의 한국인 교관과 학생들을 후원하던 중, 병을 얻은 김순도는 황포탄으로 옮겨 투병 중 1928년 서거하였다.
정부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0권 67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761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4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