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무부 직원 및 흥사단(興士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3·1운동 후 중국으로 망명한 김복형은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1919년 8월부터 내무부 서기(書記)로 활동하였다. 그는 임시정부 내무총장이던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의 휘하에서 임시정부의 사무를 담당하는 한편, 1920년부터 흥사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흥사단은 도산 안창호에 의해 1913년 미주에서 결성되었으나, 도산이 임시정부에 참가하면서 1920년 초부터 상해 지역에서도 조직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흥사단의 조직 자체는 비정치단체를 표방하였지만, 흥사단의 단원들은 독립운동 단체에 소속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상해 지역의 흥사단 운동은 1921년 9월 미주 흥사단을 본부로 하고 국내를 비롯한 중국·연해주·일본 등지를 관할지역으로 하는 지부조직으로 흥사단원동임시위원부(興士團遠東臨時委員部)가 설치되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김복형 등 초기의 흥사단원들은 독립운동과 민족발전의 방략을 논의하면서 독립운동의 기초를 굳건히 하는 한편 동지 규합에 힘을 쏟았다.
또한 그는 상해 태창중학교(太昌中學校) 교사로 근무하면서 상해 동포사회의 민족교육에 일익을 맡았으며, 1930년대에는 정화암(鄭華岩) 등이 주도한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과 연대를 가지며 활동하다가 일경에 붙잡히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新聞(1919. 12. 25)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 65·122面
- 安島山全書(島山紀念事業會) 中卷 257·260·352·380·386面
- 이 조국 어디로 갈 것인가(鄭華岩, 1982) 176∼17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