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20년
3. 1922년
4. 1923년
5. 1935년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 직후 만주 안동현(安東縣)에서 이륭양행(怡隆洋行) 주인 화란인 쇼우(george l. show)의 집을 근거로 오순근(吳淳根)·이영식(李英植)·박춘근(朴春根)·김두만(金斗萬)·김시점(金時漸)·오능조(吳能祚)·오학수(吳學洙)·장재순(張載淳)·김찬성(金燦星)·최지화(崔志花)·백일진(白日鎭) 등과 함께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결의하고 안동현임시의사회(安東縣臨時議事會)를 조직하였다. 또한 동지들과 함께 분열·연립된 청년단체를 통합할 필요성을 느끼고 김시점 등과 함께 관전현 홍통구(寬甸縣弘通溝)에서 대한청년단연합회를 조직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동년 12월에는 조병준(趙秉準)과 같이 평북 독판부(督辦府) 대표로서 청년단연합회 대표 안병찬(安秉瓚)·김찬성, 독립단대표 김승학(金承學) 등과 함께 관전현 향로구(香爐溝)에 모여 각 단체의 수뇌를 개별적으로 방문하여 통합할 것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이에 동월 12일 행동을 개시하여 기원독립단과 한족회의 찬동을 얻어 다음해 2월 광복군 참리부(光復軍參理部)를 조직, 참리부 협찬(協贊)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1월 20일에는 임시정부로부터 평북독판부 재무사에 임명되었으며, 2월 12일에는 조병준·김두만과 함께 평북 독판부 최고 간부로, 4월 2일에는 다시 재무사에 임명되었으며, 한편으로는 대한청년단연합회 제2회 총회에서 총무로 선임되기도 하였다. 1922년에는 일본군의 만주 출병으로 독립운동에 혼란이 야기되자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 통일군단(統一軍團)을 조직, 서무부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23년에는 통의부(統義府) 교섭부장으로서 김신택(金信澤)·김원상(金元常) 등과 함께 대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에는 남만의 독립운동이 복잡하게 됨을 비분하게 여기고 북경(北京)으로 이주하여 은거생활을 하다가 병으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93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58·61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44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4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5·8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337면
- 동아일보(1922. 4. 3, 1923. 1. 21)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199·307·42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65·267·283·430·66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151·281면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77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88·257·258·259면
- 한국민족운동사(중국편)(국회도서관) 41·152·407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286·437·639·711·712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17·46·59·67·71·77·78·95·99·13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3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57·46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