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경상북도 봉화(奉化) 출신이다.
1895년 일제에 의하여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이어서 12월 30일 단발령이 내려지자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나 의병 해산을 권유하는 선유사(宣諭使)가 파견되어 의진을 해산하고 이문하(李文河)·심의승(沈宜承)·김운락(金雲洛)과 같이 경성에 올라가서 경약소(京約所)를 설치하고 광화문에서 척양척왜(斥洋斥倭)의 상소를 올리다가 구금되어 수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06년 홍주에서 민종식이 이끄는 홍주의진은 홍주성을 점령하였으나, 1906년 5월 31일 적의 집중 공격으로 홍주를 빼앗기고 의병장 민종식(閔宗植)은 어둠을 이용하여 간신히 피신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80여 명이 순국하고 80여 명의 의병이 적에게 생포되었다.
그들의 한을 풀기 위하여 정회규는 이용규(李容珪)·곽한일(郭漢一)·박윤식(朴潤植)·김덕진(金德鎭)·김운락·황영수(黃英秀)·박창로(朴昌魯)·이만식(李晩植) 등과 더불어 전 참판 이남규(李南珪) 등과 결탁하고 민종식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여 재의거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1906년 10월중에 충남 예산(禮山) 지방을 중심으로 의사들을 규합하고 11월 20일(양력)을 기하여 예산읍을 공격하여 활동의 근거지로 삼기로 계획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일진회원 밀정에 의해 탐지되어 일본 헌병대가 11월 17일 새벽에 이들의 거점을 포위 습격하여 많은 동지들이 사로잡히고 계획은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그후 다시 거의하였으나, 해서지방에서 적과 접전하다가 교전 중에 적에게 체포되어 적의 해침을 입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흥주지」 2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358·359·363·36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318·319·3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