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평원(平原) 사람이다.
1907년 서울 상동교회(尙洞敎會)부설 상동청년학원을 졸업하고, 1909년 북간도 용정(龍井) 명동학교(明東學校) 교사로 초빙받아 만주로 건너가서 육영사업에 전념하였다. 특히 그는 기독교 신자로 교장 김약연을 기독교에 입교하도록 하여, 명동학교를 기독교와 민족의식을 연결한 근대교육기관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북간도 일대의 교민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중국정부와 협조하여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 : 墾民會)를 조직하고 동회의 총무로서 교민사회의 자치활동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기 전 해외에서도 파리강화회의(巴里講和會議)에 대표를 파견하는 등 본격적인 독립선언의 움직임이 있었으며, 러시아령의 국민회의를 중심으로 한 대표로서 최재형(崔在亨)이 선출되었다.
이 회의에 간도지방에서는 김약연(金躍淵)·이중집(李仲執)과 함께 그가 대표로서 선임 파견되어, 국내 대표로는 이 준(李儁)의 아들 이 용(李鏞)을 선정하고, 이동휘(李東輝)·백 순 및 간도대표 중 1인이 상해에서 이 용과 합류할 계획을 세웠다.
또한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는 일제에 대한 영구한 혈전(血戰)을 선포하여 민족독립의 의사를 강력히 밝힌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1919년 3월 13일에는 용정 및 국자가(局子街)에서 시위를 주도하였으며 대한독립기성총회(大韓獨立期成總會)에서 독립선언 축하식을 개최하였는데 명동촌(明東村) 대표인 그는 의사부원(議事部員)으로 선출되었으며, 회장 구춘선(具春先)과 함께 중국의 북경정부와 길림성장등에게 한국독립운동의 통첩을 발송하기도 하였다.
또한 같은해 6월에는 일본 신호신학교(神戶神學校)를 중퇴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방원성(方遠成)이 용정에 오자, 그를 자기집과 미국인 선교사가 경영하는 제창(濟昌)병원 등에 머물게 하면서, 맹호단(猛虎團)에 가입시켜, 용정촌 일(日)총영사관을 방화하고 친일분자를 습격하는 등 활동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1919년 8월 15일에는 임시정부 내무부 북간도 특파원에 임명되어 활동하였으며, 1920년 1월에는 상해에서 독립운동대표자들이 모여 항일투쟁방략을 논의하는 중한노공동맹연합회(中韓勞工同盟聯合會)가 개최되었는데 그는 종교(기독교)계 대표로서 이 회의에 참석하였다.
1920년 3월에는 용정촌에서 목사로서, 그리고 태광(太光)학교 교사로서 간도지방의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동년 7월 8일에는 임시정부에서 재만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하여 파견된 안정근(安定根)·왕삼덕(王三德)을 맞이하여 평소 연락처이던 옹성랍자(甕聲 子)의 그의 자택 사일상회(四一商會)에서 국민회(國民會)의 김성호(金聲鎬), 군정서(軍政署)의 김석구(金錫九), 광복단(光復團)의 최경호(崔敬昊), 의군단(義軍團)의 이창섭(李昌涉), 신민단(新民團)의 이환수(李煥秀), 의민단(義民團)의 정사선(鄭仕善) 등과 함께 통합 방안을 논의하였다.
또한 명동학교 출신으로 구성된 정행단(正行團)과 학교등이 일제의 압력을 받은 중국관청에 의해 해산된 뒤에는 구춘선(具春先)·김하석(金夏錫)·남세극(南世極) 등과 국민회(國民會)조직 확장에 전념하였는데, 1920년 9월에는 일제의 소위 진압부대(鎭壓部隊)가 편성되어 이 지역의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1923년 2월에는 우리 청년 1명이 중국 군경에 의해 사살된 사건이 일어나자 용정시 시민대회를 개최하고 윤화수(尹和洙)·김정기(金正琪)와 함께 동대회 외교위원이 되어 연길도윤 도빈(延吉道尹陶彬)을 면회하고 교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합법적인 자활운동을 전개한다는 뜻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후 그는 교육 및 종교활동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주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04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64·323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169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5·120·298·310·324·42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21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180·305면
- 동아일보(1923. 2. 27)
- 조선민족운동년감 25·63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796·812·905·97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69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350·37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