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출소 후 재차
- 처단(處斷) :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4년부터 1939년까지 중국 상해(上海) 등지에서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ㆍ간로학생친목회(間露學生親睦會)ㆍ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에 가맹해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 모집, 친일파 처단, 일본군 정보 수집 등의 활동을 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24년 7월 중국 상해 프랑스조계에서 청년동맹회, 1925년 여름 김성휘(金成暉) 등이 러시아와 간도 출신 상해 유학생을 중심으로 조직한 간로학생친목회, 1930년 오면식(吳冕植)ㆍ정화암(鄭華岩) 등의 맹혈단(孟血團)과 상해한인소년동맹(上海韓人少年同盟), 같은 해 12월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입해 활동하다 1932년 9월 12일 상해 일본총영사관에 체포되었다. 1932년 11월 16일 일본 장기지방재판소(長崎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6년 11월 남화한인청년연맹원 정윤옥(鄭允玉)ㆍ이종봉(李鍾鳳) 등과 동지 규합 및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협의하였다. 이에 11월 하순부터 2개월간 거사를 준비한 뒤, 1937년 1월 22일 친일 부호 한규영(韓奎泳)의 집을 공격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1937년 11월에는 상해ㆍ남경(南京) 등 한인 민족주의자 등이 결성한 한인청년동맹(韓人靑年同盟) 김진호(金眞浩)의 요청으로 상해 주둔 일본군 관련 정보를 수집ㆍ전달하였고, 12월에는 김구(金九)가 파견한 김선호(金銑鎬)와 친일파를 처단을 위한 거사를 계획하기도 하였다.
1939년 3월 15일 재상해일본총영사관으로부터 중국 재류금지 처분을 받고 3월 28일 경기도 경찰부로 이송되어 30일 공판에 회부되었다.
1939년 9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ㆍ강도방조ㆍ외환(外患)에 관한 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41년 형집행정지로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人 狀況報告의 件(1920. 3. 2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1)
- 朝鮮人의 行動에 관한 件(1921. 10. 5), 國外情報(1921. 10. 14), 臨時報 第5號(1921. 10. 19), 北京居住 要視察鮮人表 送付의 件(1921. 10. 22), 不逞鮮人이 조직한 敎育會에 관한 件(1922. 10. 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2)
- 國外情報(1921. 10. 14)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
- 米國在住要注意鮮人 連名簿 追記分 送付의 件(1921. 12. 5), 歐州 및 同屬領在住要注意鮮人名簿(追記分) 其他 送付의 件(1921. 12. 5), 南北亞米利加州(除米布)在住要注意鮮人連名簿 其他 送付의 件(1921. 12. 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歐米(5)
- 北京地方 在住鮮人 一般狀況(1924. 9. 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3)
- 北京 天津 附近 在住鮮人의 狀況報告書 進達의 件(1925. 3. 20) 朝鮮人에 대한 施政關係 雜件-般의 部(3)
- 北京在留朝鮮人의 槪況(1927. 5) 日帝의 韓國侵略史料叢書
- 朝鮮民族運動年鑑(上海日本總領事館, 1932) 536면
- 國外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警務局, 1934) 2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1975) 제7집 1321면, 제9집 693, 953면
-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國學資料院, 1976) 제3권 853면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3) 제8권 440~443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