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박윤근은 1911년 평안북도 선천(宣川)에서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었다.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1920년 10월 23일부터 1921년 8월 22일까지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 교통부 참사(參事)로 임명되어 독립을 위해 국내와 연락 기구를 구축하였다. 임시정부 교통부는 산하에 국내와 교통,통신 연락을 담당하기 위해 교동국(交通局)을 설치하였는데 박원근은 그 실무를 주관한 것이다. 한편 1921년 3월 손정도(孫貞道) 목사의 주도하에 조직된 대한야수교진정회(大韓耶蘇敎陳情會)에 참가하여 독립운동의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歸化朝鮮人의 氏名 등(朝鮮總督府 警務總長 : 1921. 7. 19) 不逞團關係雜件-鮮人의 部-在上海地方 (3)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제2권 433, 43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9집 626면
- 上海 鮮人의 行動에 關한 件 5(上海總領事 : 1920. 9. 25) 不逞團關係雜件-鮮人의 部-在上海地方(3)
- 上海在留 朝鮮人 現在人名簿 調製에 關한 件(上海總領事 : 1920. 9. 28) 不逞團關係雜件-鮮人의 部-在上海地方 (3)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3권 1~3, 14~24, 115~125면, 4권 43~44면
- 在上海 不逞鮮人의 宣傳計劃에 關한 件(1921. 4. 27) 不逞團關係雜件-鮮人의 部-在上海地方 (3)
- 新韓民報(1921. 3. 10, 5. 12)
- 獨立新聞(1921.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