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1921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外務部) 참사(參事)로 임명되어 대한민국 독립을 위한 외교선전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26년 12월에는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경기도 의원으로 선출되어 정부의 입법(立法)과 독립운동의 방략을 논의·결정하는 의정활동을 펼쳤다.
그 후 1932년 이봉창(李奉昌) 의사의 동경(東京) 앵전문(櫻田門) 의거와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虹口公園) 의거로 인해 일제 관헌이 독립운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를 전개하자, 일경의 수색망을 피해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중국 항주(杭州) 등으로 거점을 옮겼다. 1935년 중국 진강(鎭江)에서 관내(關內)의 한인독립운동단체와 정당들이 국내외 모든 독립운동세력과 연결하여 보다 강력하고 조직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고자 민족대당(民族大黨)인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이념의 차이로 임시정부 계열의 단체와 인사들이 불참함에 따라 그 또한 동년 9월 민족혁명당을 탈당하여 조소앙(趙素昻)·문일민(文一民) 등과 함께 민족주의 세력을 규합하여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재건하고, 임시정부를 지지하였다.
한국독립당 재건 후 중국측의 원조를 받아 진광사(震光社)를 설립한 후, 당 기관지인 「진광(震光)」의 영문번역을 담당하여 무장독립투쟁의 지속적인 전개와 민족의식의 고취, 한중항일연합전선(韓中抗日聯合戰線)의 결성 등을 강조한 그는 1934년부터 1936년까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임시정부 재흥(再興)에도 진력하였다. 이와 같이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재건 한국독립당 당원, 대한민국임시정부 상임위원(常任委員) 및 참사 등을 역임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줄기찬 투쟁을 전개하다가 1938년 9월 6일 상해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년감 156·211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12권 124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823·844·88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05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346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32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其二) 4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