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황해도 송화(松禾) 사람이다.
1919년 5월 중국 상해에서 각 청년단체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청년단(靑年團) 평의원(評議員)으로 선임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동년 6월 12일에는 상해에서 조직된 구국모험단(救國冒險團)의 기술부원으로 선임되어 군자금 모집과 폭탄 제조, 무기 구입, 일본인 고위관리 암살 및 관청 파괴를 목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21년에는 상해에서 군무총장 노백린(盧伯麟)의 무장투쟁론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그 후 1931년 후반기부터 일제의 중국대륙 침략이 본격화됨에 따라 김 구(金九)는 한인독립운동과 중국 국민당정부(國民黨政府) 간에 국제적 연대를 형성할 목적으로 장개석(蔣介石)이 이끄는 국민당정부의 재정적·군사적 지원을 토대로 독자적인 투쟁역량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 결과 1933년 봄 김 구는 중국 남경(南京)의 중국육군군관학교(中國陸軍軍官學校)에서 장개석과 회합하여 1934년 2월 중국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에 소재한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洛陽分校) 내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였다.
이에 따라 남경에서 김 구의 모친 곽낙원(郭樂園) 여사와 함께 기거하던 그는 1934년 4월부터 김 구의 명령에 의해 남경에 비밀연락소를 설치하고, 그의 조카인 노영호(盧榮昊)와 함께 군관학교 입교희망생인 백찬기(白贊基) 등을 모집하여 군관학교에 입교시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동년 12월 하순에는 낙양군관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국특무대독립군(韓國特務隊獨立軍)을 조직하고 학생부를 담당하여 오면직(吳冕稙)·노종균(盧鍾均)·안공근(安恭根) 등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간부들과 함께 국제정세 및 한국독립운동에 관한 정식교육을 실시하여 항일 특무활동 공작원을 양성하는 데 실질적 담당자 역할을 하였다.
그 후 1935년 9월에는 낙양으로 파견되어 김 구의 특무활동 연락기구 구실을 하였으며, 동년 10월에는 한국특무대독립군 출신들로 구성된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에 가입하여 김 구의 특무활동공작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다가 1938년경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무장독립운동비사 3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77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1집 827·834면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89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其二) 443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28·330·88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9집 51면
- 조선통치사료(한국사료연구소) 제8권 470·477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4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144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65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其一) 227·2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