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단(處斷) :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북 명천(明川) 사람이다.
만주에서 독립군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08년 명동서숙(明東書塾) 갑반(甲班)을 졸업하였다. 이 학교는 1908년 4월 27일 김학연(金學淵)이 화룡현(和龍縣) 태랍자(太拉子) 명동촌(明東村)에 설립한 학교로서 민족교육의 산실이었다.
남세극은 1913년 간민회(墾民會)에 가입하여 태랍자 지역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간민회는 김약연(金躍淵) 등이 1913년 1월 13일에 중국지방 정부의 설립인가하에 조직한 단체로서 중국 법률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관이었다. 간민회는 중앙조직을 갖추고 난 후 지방조직의 설치에도 박차를 가하였다.
그는 1919년 용정(龍井)에서 3·13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김약연·구춘선(具春先) 등과 함께 재남북만주 조선민족대표 17인 가운데 1인으로서 '조선독립선언포고문' 을 서명, 발표하였다. 같은 해 5월 태랍자 자택에서 편집부원 유하천(柳河天)과 함께 「대한독립신문」을 작성하여 명동, 정동(正東) 학교 등 각지에 배부하였다. 그리고 5월 14일 자신의 집에서 마진(馬晉)·유하천·유예균(劉禮均)·최기학(崔基學)·지송(池松) 등과 모여 간도 국민회 보조기관으로서 신국민단(新國民團)을 조직하고 교민 자치를 위하여 지원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19년 11월 노령으로 피신하였다가 돌아와 화룡현(和龍縣) 지신사(智新社)에서 대한국민회 남부지방총회 재무부장을 맡아 군자금 모집에 적극 활동하였다. 대한국민회는 3·1운동 이후 북간도지역에서 조직된 항일독립운동단체 중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로 평가되고 있다.
대한국민회는 이념적으로는 공화주의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자치기구의 성격을 가졌지만 무장활동을 통하여 일제를 물리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금의 모집, 독립군의 양성 등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무장활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1923년 2월에는 마진 등과 대한국민회측 대표로 적기단(赤旗團) 회의에 참석하여 무장활동을 논의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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