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황해도 장연(長淵) 사람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전국 각지에서 토역복수(討逆復 )를 외치며, 의병이 일어남에 그도 연안에서 유생 이윤룡(李潤龍) 윤철모(尹哲模) 등과 1906년 여름에 의병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에게 사람을 보내어 시국을 통탄하며 구국의 길을 의논하였다. 이에 면암은 그들의 우국충정을 찬양하면서 거의(擧義)를 권장하였다.
그후 그는 교편을 잡고 후진양성에 전념하다가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만드는 등 시위에 앞장섰다.
1919년 10월부터는 장연군(長淵郡)에서 대한적십자회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20년 이후에는 의용단(義勇團)으로 개편하여 활동하였다. 주요 활동내용은 독립신문을 배달하는 등으로 독립사상을 계몽하고 임시정부의 독립공채(公債)를 모집한다던지 기타 재정 자금을 수합하는 일을 하였는데, 장연군을 비롯하여 송화(松禾), 옹진, 해주지방의 활동이 현저하였다.
그는 또한 임시정부의 명령을 받는 해서국민회(海西國民會)를 1919년 11월에 조직하여 오두현(吳斗鉉)을 회장으로 추대하고 그는 서무를 맡았다. 한편 의용단은 소단(小團), 분단(分團), 부단(部團)으로 조직하여 소단은 10명, 분단은 10개소단, 부단은 10개분단으로 조직하여 무장하고 일제 앞잡이, 밀정, 경찰을 처단하고, 독립신문과 임시주비단 단칙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동 의용단의 사령관이 되었으며, 박치남(朴致南) 곽규호(郭奎浩) 손상대(孫常大) 임종문(林宗文)이 면 단장이 되고 김원려(金元麗)가 군 참모장이 되어 활약하다가 1921년 3월에 체포되었다. 그는 동년 5월 해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연감 50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587 59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40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33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6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92 493 503 504 9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