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8011
성명
한자 張京春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1 훈격 애국장
1919년 4월 4일 이리장터에서 300여 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를 배부하며 시내를 행진하며 1,000여 명으로 증가된 시위대열에 참가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다가 적군경의 무차별 발포로 사살 순국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 고창(高唱) : 노래, 구호, 만세따위를 큰 소리로 부르거나 외침
  • 사살(射殺) : 활이나 총 따위로 쏘아 죽임.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전라북도 익산(益山) 사람으로 기독교(基督敎)인이다.

1919년 4월 4일 이리(裡里) 장날을 이용하여 문용기(文鏞祺)·박도현(朴道賢)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곳은 3월 26일 만세시위가 전개된 이래, 일본의 보병 제 4연대 1개 중대가 주둔하여 삼엄한 경비를 펼쳐왔다. 그러나 오산면(五山面)의 문용기·박도현 등의 기독교 간부들과 수차에 걸쳐 숙의를 한 끝에, 이리 장날인 4월 4일을 기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4월 4일 정오, 1천여명의 시위군중이 이리 장터에 모이자, 그는 이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때 일본 헌병대 보병부대가 출동하여 시위군중을 무력으로 해산시키려 하였지만, 만세시위의 대열은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만세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그러자 일제는 수백명의 소방대와 일본인 농장원까지 동원하여, 총·창검·곤봉·갈구리등을 마구 휘두르며 행패를 부리다가, 급기야는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였다. 이때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벌이던 그는, 일제의 야만적인 발포로 말미암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28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521·523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장경춘 - 전북 익산 1919년 익산군 익산면 만세운동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관련 현충시설 정보

도움말
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비석 익산 3·1운동 기념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2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장경춘(관리번호:8011)
*오류 제목
*오류 유형
*오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