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남 강동(江東) 사람이다. 중국 상해에 본부를 둔 의용단(義勇團) 단원 김봉원(金鳳源)이 의용단의 지시로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국내로 밀파되어 평남지역에서 의용단 강동지단(江東支團)을 설치하자, 김봉섭(金鳳燮)·김공린 등과 함께 단원으로 가입하였다. 입단 후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부하기 위해 1920년 11월 단원들과 함께 대동군(大同郡) 시족면(柴足面) 운곡리(雲谷里) 강소사(康召史)와 박덕승(朴德承)의 집을 방문하여 30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12월 25일에는 강동군 원탄면(原灘面) 마산리(馬山里) 김영린의 집을 방문하여 군자금 제공을 약속받았다. 또한 1921년 1월 1일에는 대동군 시족면 운곡리 김응천(金應天)과 박덕종(朴德鍾)으로부터 각각 40원씩의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동월 22일에는 평남 함천군(咸川郡) 읍내에 사는 정현조(鄭炫祚)를 단독으로 방문하는 등 지속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제 밀정 김원봉(金元鳳:의열단장 金元鳳과는 同名異人)이 이들의 군자금 모집활동을 일경에게 고발함에 따라 일경의 대대적인 수색 작전이 전개되자, 1월 29일 단원 김태린(金泰麟)·김봉섭(金鳳燮) 등과 함께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먼저 독립운동에 방해되는 세력인 친일파와 밀정을 처단할 것을 논의하였다. 이에 따라 1월 30일 밀정 김원봉의 집을 기습하여 총살, 처단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혔다. 1921년 10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65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546면
- 동아일보(1921.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