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평북 정주(定州)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1920년부터 1933년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파견 광동(廣東) 선전부장, 중한협회(中韓協會) 서무부장, 황포군관학교(정식명칭 中國國民黨陸軍軍官學校) 군의(軍醫) 등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평북 정주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었다. 같은 해 4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및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0년 6월경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나창헌(羅昌憲) 등과 함께 활동하였으며, 같은 해 9월에는 상해 대한인거류민단(大韓人居留民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5월 손문(孫文) 등이 광동에서 광동중화민국정부를 수립하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김기제를 선전부장으로 임명하여 김천정(金擅廷)ㆍ이우민(李愚珉)ㆍ임권(林勸)ㆍ손사민(孫士敏)ㆍ박영우(朴永祐)ㆍ김희작(金熙綽)ㆍ전재한(田在漢)ㆍ차정신(車廷信) 등과 함께 파견하였다. 9월 광동에서도 한중호조운동(韓中互助運動)이 일어나자, 9월 29일 중국 유력인사들과 중한협회를 조직하고 서무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1월 중국 광주(廣州)에서 황포군관학교가 설립되자 군의 겸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 학생 입교문제에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이후 19로군(路軍)의 항일전투에도 군의관으로 참전하였다. 1926년 오철성(吳鐵城) 휘하 군대의 군의로 있으면서 산두(汕頭)로 출장하였으며, 1933년 11월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광주지부(廣州支部)에 100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每日申報(1919. 4. 27)
- 獨立新聞(1923. 3. 14)
- 韓民(1936. 9. 30)
- 朝鮮人의 檄文 配布에 관한 件(1920. 7. 19), 上海 鮮人의 行動에 관한 件 5(1920. 9. 25) 不逞團關係雜件-鮮人의 部-在上海地方(3)
- 國外情報 : 僭稱上海假政府幹部의 黨派別(1921. 5. 10)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3)
- 不逞鮮人 來廣의 건(1921. 9. 1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上海假政府(4)
- 中韓協會 發開式 擧行의 件(1921. 9. 29), 中韓協會 取締方에 관한 件(1921. 9. 30), 不逞鮮人의 行動에 관한 件 3(1921. 10. 7), 不逞鮮人의 在?行動에 관한 報告의 件(1921. 10. 7), 中韓協會의 發會式 擧行(1921. 10. 21), 在外 朝鮮人團體 調査方의 件(1921. 11. 1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2)
- 朝鮮人의 動靜에 관한 件 1(1924. 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3)
- 廣東地方 不逞鮮人의 動靜에 관한 報告의 件(1926. 1. 2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支那各地(4)
- 印刷物 送付에 관한 件(1926. 3. 23) 不逞團關係雜件-鮮人의 部-在上海地方(6)
- 不逞鮮人 李裕弼의 犯罪事實에 關한 件(通牒)(1933. 4. 7) 일제경찰심문조서(독립기념관 소장)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1973) 資料 3 臨政篇 ⅲ 195면
- 日本外務省特殊調査文書(高麗書林, 1989) 제24권 429~433면
- 韓國獨立史(金承學, 1970) 하권 340~3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