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12월 일제의 강제에 의하여 국권이 침탈되자 애국단체인 상동청년회 (尙洞靑年會) 의 우국지사들이 중심이 되어 1907년 신민회 (新民會) 를 비밀조직하고 독립운동자 양성과 독립기지를 국외에서 개척하기로 합의된 바에 따라 6형제 50여 가족이 입만 (入滿) 하여 유하현 (柳河縣) 삼원보 (三源堡) 에 정착하고 경학사 (耕學社) 와 신흥강습소 (新興講習所) 를 설치 독립군 장교 양성과 국권 회복을 위한 기반조성을 위하여 형 (兄) 석영 (石榮) 의 가산 (家産) 6,000여석을 투입하고 형제가 합심하여 1910년대 초기의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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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서울 저동(苧洞) 사람이다. 이회영(李會榮)의 형제중 셋째이다.
1909년 구국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6형제가 함께 만주 봉천성 유하현(奉天省柳河縣)으로 망명하였다.
1911년 4월에 삼원보(三源堡)에 한족의 자치기관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고 사장에 취임하여 황무지 개척사업을 벌였으며 이주 동포들의 정착과 생업지도(生業指導) 등에 전력을 다하였다.
또한 동 부속으로 신흥강습소를 설치하여 애국청년들을 훈련시켰다. 경학사는 병농제(兵農制)를 채택하여 낮에는 개간과 농업에 종사하며, 틈틈이 군사훈련을 실시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이후 그의 활동내용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54·255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46·34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10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36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32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1·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