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3월 경북 (慶北) 영천 (永川) 에서 정용기 (鄭鏞基) 가 부명 (父命) 을 따라 거의 (擧義) 하니 실형 (實兄) 인 중군장 (中軍將) 이한구 (李韓久) 와 함께 입진 (入陣) 하여 진중실기 (陣中實記) 를 초집 (抄集) 하는 임무를 띄우고 활동하다가 1907.10.7 입암 전투 (立巖戰鬪) 에서 정용기 (鄭鏞基) 와 실형 (實兄) 이한구 (李韓久) 등 장령 (將領) 이 전사당하고 그 뒤를 이은 정환직 진 (鄭煥直陣) 에서 활동하다 또한 전패하니 서종락 (徐鍾洛) 과 후일을 기약하고 귀가하여 지내다가 1914년경 우재룡 (禹在龍) 권영만 (權寧萬) 등 전 의병 (前義兵) 간부인 광복회원 (光復會員) 과 상통하며 활동하다 만주 (滿洲) 로 솔가피신 (率家避身)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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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擧義) : 의병을 일으킴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1906년 4월 정용기(鄭鏞基)·이한구(李韓久)의 산남의진(山南義陣)이 조직되자 이에 입대하여 주로 통신·정찰의 책임을 맡고 의진 밖에서 이세기(李世紀)·남우팔(南禹八)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활약하였다.
의병장 정용기가 순국한 후 그의 부친 정환직(鄭煥直)이 의진을 통솔하게 되자 그 막하에서 활약하던 중 1908년 의성 구봉산(義城 九峰山)에서 적과 접전하다가 다리에 총상을 입고 불구가 되었다.
1912년 만주 반석현(盤石縣)에서 이상룡(李相龍)을 만나고 우재룡(禹在龍)의 소개를 받아 광복회(光復會)에 가입하여 활약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산남창의지 하권 75면
- 산남의진비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