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2월 만주 (滿洲) 광복군총영 (光復軍總營) 대원 (隊員) 으로서 평북 (平北) 의주군 (義州郡) 송장면 (松長面) 거주의 적정 (敵偵) 허병련 가 (許丙連家) 에서 유숙 (留宿) 하고 있다가 적경 (敵警) 에게 피체 되었으나 이송 도중 적경 (敵警) 을 때려 눕히고 본영 (本營) 으로 귀환하였으며 대한청년단연합회 (大韓靑年團聯合會) 별동대 (別動隊) 로 적기관 파괴와 주구토벌 군자금모집 등으로 활동하다가 피체 되어 징역8년을 받고 복역 하다가 평양감옥 (平壤監獄) 에서 경성감옥 (京城監獄) 으로 이송되던 중 서울 남대문 역전에서 독립만세를 고창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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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1920년 대한청년단연합회 별동대원으로서 의주에 진입하여 강계(江界)로 가던 우편 행랑을 습격하였으며, 동년 7월에는 광복군사령부 특파원으로 의주·용천(龍川)·선천(宣川)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동년 10월 차연환(車連煥)과 의주에서 체포되어 평양에서 징역 8년형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고등경찰관계년표 8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상권 355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30면
- 독립신문(1922.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