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그는 1919년 이탁(李鐸)의 주도로 결성된 27결사대(決死隊)에 가입하였는데, 이단체는 친일매국노(親日賣國奴) 이완용(李完用)·박제순(朴齊純)·조중응(趙重應) 등을 처단하기 위하여 1919년 만주(滿洲)에서 결성된 지하조직이었다.
그와 27결사대는 1919년 3월 3일 광무황제(光武皇帝)의 국상일(國喪日)을 기해서 거사하기로 하고 2월 26일 서울로 잠입하였다. 그러나 무기의 입수가 늦어져 3월 3일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대원들과 함께 역적들에 대한 성토문과 일제(日帝)에 대한 경고문 등을 독립문과 종각에 부착하는 등의 활약을 하면서, 역적의 처단기회를 노리던 중, 일경에게 붙잡혔다.
1921년 1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1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65면
- 동아일보(1920. 9. 3, 1921.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