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서울 사직동(社稷洞)에서 태어났으며 중추원 의관을 지내었다.
일제가 헤이그 밀사사건을 구실로 1907년 7월 19일 고종을 강제 양위시키고 고종이 일본 동경에 친행하여 사과할 것을 강요하며 「정미7조약」을 강제 체결하려고 하는 등 침략을 강화하자, 이규응은 통분을 이기지 못하여 이완용 등 매국노들을 성토하는 상소문을 짓고 밤새도록 통곡하다가 1907년 7월 23일 하오 6시경 독약을 마시고 자결 순국하였다. 그는 상소문에서 반드시 나라의 원수를 갚고 국권을 회복할 수 있는 시기가 있을 것이니 정미7조약에 옥쇄의 날인을 하지 말 것이며 양위를 하지 말고 동경의 친행도 윤허하지 말 것을 요청하면서 고종의 결단을 호소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충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14 23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182 183면
- 대한계년사(하) 274 2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