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북도 임실(任實) 출신이다.
1907년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이 일제의 책동에 의해 체결되고, 이때 교환된 비밀 각서에 의해 그해 8월 1일 한국군의 해산이 강행되었다.
윤정오는 그러한 일제의 내정 간섭에 통분함을 금치 못하고 진안(鎭安) 마이산(馬耳山)에서 구국동지 수백 명을 규합하여 동맹단(同盟團)을 조직하였다.
이때 같은 고향 출신인 유생 이석용(李錫庸)이 전해산(全海山)과 더불어 의거의 기치를 드날리게 되자 그 휘하로 들어가 크고 작은 전투에 참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9월 13일 진안읍을 공격하여 무기 및 군수품을 노획하여 의병의 병력에 보태었다.
9월 16일 내원사(內源寺)에서 적과 접전하여 적 2명을 사살하고 많은 적에게 부상을 입히는 전과를 올렸다. 10월 8일 화암리 후방산(華岩里 後方山) 위에서 적과 접전하였고, 11월 17일 장수(長水) 읍을 공격하여 적을 남원(南原) 쪽으로 후퇴시켰다. 12월 25일 진안 무술촌(戊戌村)에서 적 2명을 사살하였다.
1908년 3월 5일 진안 시동(矢洞)에서 토벌대와 접전을 벌여 적 1명을 포살하였으며, 3월 17일 수류산(殊流山)에서 적과 접전하여 적 3명을 포살하였다.
윤정오는 이상의 전투에 참전하였을 뿐 아니라 임실군 석현면 유천리(石峴面 柳川里)에 사는 한씨와 오지면 어은동(梧枝面 漁隱洞)에 사는 최씨 등 세금 영수원들이 의병운동에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세금만 독촉하는 민폐를 끼치므로 그들의 집에 방화하고 볼기를 쳐 일벌백계로 삼았다.
1908년 3월 22일 동지와 더불어 운현(雲峴)에서 적과 접전하던 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601·60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1권 933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0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