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양응인은 전라남도 구례(求禮) 출신이다.
청일전쟁에 이어 노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에서의 국제적 우위를 확인 받았다. 그후 한반도 식민지화에 박차를 가하여 1905년 을사조약을 늑결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격분을 금치 못한 양응인은 장흥(長興)사람 녹천 고광순(鹿泉 高光洵)이 기삼연(奇參衍)과 더불어 거의하여 1906년 11월 의병을 거느리고 구례(求禮)·광양(光陽) 등지에서 크게 활약함에 고광순 의진에 입대하였다.
1907년 구례 섬진강변에 의병 요새를 구축하여 몇 차례 적과 교전하여 적의 침입을 봉쇄할 수 있었다.
1908년 구례 강진면 금산 흑치(康進面 錦山 黑峙)에서 적군과 접전하다가 의진이 크게 패하였는데 이때 불행히도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전남도지 4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592·593면
- 구례향교통문 (191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