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1920년 2월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선천군에서 박인항(朴仁恒)·엄승도(嚴承道) 등과 함께 대한청년단을 조직하였다.
동년 2월 14일에는 일제 앞잡이인 태산면장(台山面長) 김병준(金炳駿)과 서기 김은기(金殷基)를 사살하고 박인혁(朴仁赫)으로부터 모금한 군자금 2천여 원을 받아 엄승도를 통하여 대한독립단에 전달하였다.
1921년 4월 상해로 망명하였으며, 그는 1923년 4월 12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궐석판결로 징역 15년형을 받았다. 1925년 6월에는 상해에서 교포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등 임시정부 경무국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정위단(正衛團)을 조직하여, 임정내무차장 나창헌(羅昌憲)을 단장에 추대하고 그는 정위단원으로 활약하였으며, 1926년 1월에는 이를 보다 강력한 단체로 확대 개편한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에 가담, 박창세(朴昌世)·강창제(姜昌濟)·장진원(張鎭元)·최병선(崔炳善)·김광선(金光善)·김예진(金禮鎭)·김창근(金昌根)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동년 9월에는 일본영사관에 폭탄 2개를 투척하여 건물 일부를 파괴하였다.
또한 1931년 1월에 흥사단(興士團) 원동지부 지도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동년 3월 29일에는 민족의 자활, 자위를 목표로 하는 공평사(公平社)를 창립하여 이사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상해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로 압송되었다가 1932년 1월 1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다시 상해로 망명하였다가 조국의 운명을 비관하고 자결 순국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51면
- 고등경찰요사 105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562·596면
- 동아일보(1931. 8. 17, 8. 19, 9. 2, 11. 4, 11. 9, 11. 11, 1932. 1. 4, 1. 19, 1. 21, 3. 14, 3. 15)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86·487·908면
- 조선민족운동연감 263·26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