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일본 전수대학 예과 재학중인 1937년 12월에 민족차별에 항거하여 독립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1939년 12월부터 같이 고학하던 김순창(金順昌)·한관수(韓寬洙) 등을 동지로 포섭하였다.
그는 중일전쟁에서 일본의 패배를 예견하고, 연합군에 의해 동경이 폭격당할 때를 봉기의 기회로 삼아 독립을 달성하기로 하였다. 또 행동방침으로는 수만명의 동경재류 동포를 20내지 30명씩 단위로 동경시내의 수백여처에 배치하고 방공호 및 소방물자 그리고 교통기관 등을 철저히 파괴함으로써 혼란을 더욱 가중시켜 회복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동지를 포섭하고, 또 행동집단을 동경내에 수백개 설치하여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하는데 힘을 쏟기로 하였다. 또한 무기의 입수가 곤란한 형편이었으므로 몽둥이 등을 무기로 대체하는 한편 극약품을 탈취하여 이를 무기로써 사용하는 방법 및 소련군으로부터 무기를 얻어 싸우는 방안 등도 계획하였다.
이같은 목표아래 동지포섭 및 동지간의 유대강화에 노력하면서 민중계몽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이러한 활동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그는 1941년 9월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1942년 5월에 동경형사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75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3권 312면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2권 86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