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1919년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폈다.
대한청년단연합회는 동년 안병찬(安秉瓚)·김승만(金承萬)·김찬성(金燦星)·김시점(金時漸) 등이 만주 관전현(寬甸縣) 홍통구(弘通溝)에서 주도·조직한 무장투쟁단체로서 국내외의 청년단체들을 규합하여 150여개의 가입단체와 3만여명의 단원을 거느린 방대한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동회는 임시정부를 옹호·지원하며 뜻있는 청년들을 선발, 의용대(義勇隊)를 조직하여 '독립전쟁을 준비할 것, 국내외의 주요지역에 교통기관을 설치하여 임시정부 국내 연통제(聯通制)의 기능을 수행할 것' 등을 행동강령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였으며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배포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였을 뿐 아니라 국내외 각 지역의 청년단을 통해 의용대를 양성하고 일제 관공서를 폭파하는 등 활발한 항일투쟁을 폈다.
그는 1919년 9월 대한청년단연합회 서무부원 지응진(池應振)의 지도를 받아 선천에서 동단의 지부로 선천청년단(宣川靑年團)을 주도·조직하고 단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선천청년단은 이후 동지규합에 힘써 단원이 백 수십명에 달하였으며 그는 전용석(田龍錫)·박치흠(朴致欽)·박만채(朴晩采)·박천규(朴天圭)·김경두(金景斗)·김용채(金龍采)·계창림(桂昌林) 등과 함께 1920년 4월까지 1,200여원의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한청년단연합회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그러던 중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일경에 붙잡혀 그는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가혹한 고문의 여독으로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박은식전서 상권 657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5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4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8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8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