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칠곡(漆谷) 사람이다.
3·1독립운동 당시 고향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일경에 붙잡혔으나 연소자라는 이유로 석방되었다.
또한 중국 상해(上海)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손병선(孫秉善)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에 힘을 쏟기도 했다.
그후 1927년 2월에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자 동년 4월 동지들과 함께 신간회 칠곡군지부를 조직하고 항일투쟁을 펴나갔다. 이때 그는 주로 민족교육운동에 관심을 갖고 무산아동의 수업료 면제와 한국인을 위한 교육실시를 주장하였다.
그런데 1931년에 신간회가 해소됨에 따라 그는 옛동지 손병선과 함께 다시 군자금 모집활동을 펴던 중 1938년 일경에 붙잡혀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고초를 치르다가 불기소처분으로 풀려났다.
이후 패망직전의 일제가 단말마적 발악으로 1945년 8월 전국의 애국지사들을 강제 검거할 당시 주요 인물로 지목되던 그는 일경에 붙잡혔으나 연행도중 지조를 지키기 위해 낙동강 철교에서 투신·순국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