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충남 공주(公州) 사람이다.
1941년 비밀결사 공주그룹에 가입하여 항일 활동을 폈다.
일본 동경의 전수대학(專修大學)에 유학중이던 현창석(玄昌碩)은 1941년 11월 하순 자신의 하숙에서 채용석(蔡用錫)·정종락(鄭鐘樂)·김원식(金源植) 등과 더불어 국제정세와 조국의 장래에 대하여 논의하던 중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 결국 일제가 패망할 것이므로 이 기회를 포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자는 데에 뜻을 함께 하여 비밀결사 우리조선독립그룹을 결성하였다.
이후 이들은 임헌도(林憲道)·박인석(朴寅錫)·권오황(權五煌)·정낙진(丁洛鎭)·이종흘(李鐘屹) 등을 새로이 회원으로 기입시키는 등 조직의 확대에 힘을 쏟았다.
이에 앞서 현창석은 1941년 6월 하순경 귀국하여 우리조선독립그룹의 연계조직으로서 국내에 공주그룹을 결성하였다. 공주그룹은 일제의 농업기관에 근무하던 한국인들이 주축이 되었는데 당시 논산군청에 근무하던 노 섭도 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자, 현창석 등은 1942년 1∼3월경에 이러한 국제정세를 이용한 구체적인 독립운동의 방안을 논의하였다.
이들은 미군이 동경을 공습할 경우, 그 기회를 이용하여 봉기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행동방침으로 각기 담당지역을 설정하여 공습시에 방화(放火), 수도(水道)파괴, 소화(消火) 방해, 교통노선 파괴 등을 결행하는 한편 일본내 동포들의 봉기를 주도하기 위하여 연설 및 격문살포 등을 계획하였다. 또한 일본내의 동포들이 봉기할 경우 이에 호응하여 공주그룹의 주도하에 국내에서도 독립운동을 펴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을 추진하던 중 1942년 3월 28일 현창석이 일경에 붙잡히는 바람에 우리조선독립그룹과 공주그룹의 조직 전모가 노출되었다.
이에 따라 노 섭도 1942년 6월 26일 공주에서 일경에 붙잡혀 일본으로 압송되었다. 그는 이후 일경의 가혹한 고문과 옥고의 여독으로 1943년 2월 14일 병원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소화특고탄압사 8권 8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