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울진(蔚珍) 사람이다.
1932년 1월 윤두현(尹斗鉉)·진기열(陳基烈)·이우정(李愚貞)·남왈성(南曰星)·전영경(田永璟)·주진황(朱鎭晃)·최학소(崔學韶)·황택용(黃澤龍)·최재소(崔在韶)·전홍석(田洪碩)·남용린(南容麟)·주맹석(朱孟錫)·주유만(朱有萬)·남준영(南峻永) 등과 조선독립공작당(朝鮮獨立工作黨)을 조직,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후 1934년 2월 조직이 일경에 탄로되어 1년 6개월간 함흥(咸興)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그때 왼쪽 팔에 상처를 입고 불구가 되었다.
그러나 1940년 4월경 다시 임시헌(林時憲)·전남출(田男出)의 권유에 의해 창유계(暢幽稧)에 가입·활동하였다. 창유계는 1939년 10월 28일 임시헌·남원수(南源壽)·노하순(盧夏淳)·주영석(朱永錫)·남정성(南情性)·전원강(田元江) 등이 주도·조직한 항일비밀결사로서 계형태를 가장하여 소규모 조직으로 운영되었다.
동계는 결성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회합을 가지면서 조직의 강화와 선전활동의 확대에 주력하였는데, 1943년 3월 일제에 발각되어 조직이 와해되었다.
남석순도 이때 붙잡혔는데 예심이 진행되는 도중 가혹한 고문으로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44. 7. 21 대구지방법원)
- 한국독립사(김승학) 전권 5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