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경남 합천(陜川) 사람이다.
1919년 2월 23일 동경(東京) 유학생인 최승만(崔承萬)·변희용(卞熙瑢) 등 12명과 함께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 민족대회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 대회 소집에 관한 취지문을 인쇄하여 24일 일본 일 비곡(日比谷) 공원에서 이 전단을 배포하며 거사계획을 하던 중 일경에 피검되었다가 석방되었다.
동년 6월 상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귀향하여 동아예비교생(東亞豫備校生) 이용노(李龍魯)로 하여금 자금을 조달하도록 하다가 주동자로 피검되어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재일(在日) 조선청년연합회(朝鮮靑年聯合會)의 집행위원으로 청년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켰고, 1922년 9월에는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의 교원으로 재직하면서 배일사상을 고취하였으며, 1926년에는 조선일보(朝鮮日報) 대구지국(大邱支局)을 맡아 신간회(新幹會)를 지원하였다.
1931년 6월 11일 조선일보 대구지국장 겸 특파원으로 재직시 일본경찰의 발검사건(拔劍事件)보도로 피검되어 동년 7월 3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민족정기를 고취하기 위하여 대구상업학교(大邱商業學校)의 동맹휴학을 유도하기도 하는 등 광복시까지 필봉으로 일본에 항거하는 등의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형사사건부
- 고등경찰요사 189·190·246·247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49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35·42면
- 동아일보(1931. 7. 22)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65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8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