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함남 원산(元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이 있자 서일(徐一)·계화(桂和)·채 오(蔡五)·양현(梁玄) 등과 함께 길림성 왕청현(吉林省汪淸縣)에서 중광단(重光團)의 토대위에 군사적 적극행동을 취하기 위하여 정의단(正義團)을 조직하고 강령을 만들어 발표하여 단원을 모집하는 한편 신문을 발간하여 재만한인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동년 7월에는 일본 내각 원경(原敬) 총리대신에게 서일·계화·김붕(金鵬)·김일봉(金一鋒)·정신(鄭信) 등과 함께 건백서(建白書)를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의단은 군사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으므로 한국무관학교 시절부터 비호(飛虎)라는 별명을 가진 유명한 역사(力士)요, 망국후에는 오성학교(五星學校) 교감으로 있다가 광복단(光復團)사건에 연좌되어 3년간 옥중생활을 하고 북만을 찾아온 김좌진(金佐鎭)을 맞이하여 동년 8월 7일에 정의단을 근본적으로 개편하여 임전자세의 군정부를 편성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서일·현천묵(玄天默)·김좌진·계화·이장녕(李章寧)·김규식(金奎植)·이범석(李範奭)·조성환(曺成煥)·박성태(朴成泰)·정신·김찬수(金燦洙)·박두희(朴斗熙)·홍충희(洪忠熹)·이홍래(李鴻來)·윤창현(尹昌鉉) 등과 같이 북로군정서를 조직하고 주요 멤버로서 활동하였으며, 1920년 8월에는 총재부 비서장으로서 일하였다.
또한 1920년 10월 23일에는 임시정부의 연통제 조직하에서 간북북부총판부(墾北北部總辦府) 참사(參事)로서 주병수(朱秉洙)·최정국(崔正國) 등과 같이 일하였다.
1926년 3월에는 신민부원(新民府員)으로서 동지 이단(李檀)·김준(金俊) 등과 함께 간도에서 1920년 독립군이 산중에 묻어 두었던 장총 20정과 탄환 2,000발을 발굴하여 운반하려다가 중국관헌 보위단(保衛團)에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조선일보(1926. 3. 30)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02·310·319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15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969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82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103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78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7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29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364·36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77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