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박상진 (朴尙鎭) 이 영도 (領導) 하는 광복회 (光復會) 에 김좌진 (金佐鎭) 노백린 (盧伯麟) 등과 함께 입회 (入會) 하고 대한독립 (大韓獨立) 국권 (國權) 을 광복 (光復) 하기 위하여 활동 (活動) 하다가 광복단 (光復團) 의 비밀 지령 (秘密指令) 으로 만주 (滿洲) 신양 (瀋陽) 으로 신양 (瀋陽) 에서 천진 (天津) 으로 천진 (天津) 에서 중국상해 (中國上海) 에 도착 (到着) 하여 대한민국 (大韓民國) 임시정부원 (臨時政府員) 이 되었다가 임정 (臨政) 의 지령 (指令) 을 받아 국내 (國內) 에서 군자금 (軍資金) 을 모집 (募集) 하고 임정 (臨政) 의 통신기관 설치 (通信機關設置) 를 위하여 활동 (活動) 하다가 피체 (被逮) 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았으나 악독 (惡毒) 한 고문 (拷問) 에 항거 (抗拒) 하고 단설 (斷舌) (2회)로서 광복회 (光復會) 의 비밀 (秘密) 을 유지 (維持) 케하며 동지 (同志) 의 신변 (身邊) 을 보호 (保護) 하는 등 활동 기간 (活動期間) 4년 9월과 옥고 (獄苦) 기간 (期間) 1년 11월 20일을 합산 (合算) 할 때 6년 8월여간 (月餘間) 의 활동 (活動)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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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전남 광산(光山) 사람이다. 1916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활동하였다. 대한광복회는 박상진(朴尙鎭)·채기중(蔡基中) 등을 중심으로 1915년에 결성된 혁명단체로서 주로 군자금 모집, 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폈다. 그런데 1918년초 동회의 조직이 발각되어 동지들이 붙잡히자 몸을 숨기고 있던 중 1920년 7월에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안창호(安昌浩)·김 구(金九) 등 임시정부(臨時政府) 요인들과 연락·접선·회합한 후 군자금 모집과 독립운동 조직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내에 잠입하였다. 그런 뒤 각지 청년회와 연락하며 임시정부의 통신기관(通信機關) 설치에 힘쓰는 등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남(全南) 나주(羅州)에서 붙잡혔다. 동년 11월 27일에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1921년 3월 8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확정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1926년 전남 장성(長城)에서 군자금 모집중 장성경찰서에 붙잡혀 3개월간 옥중생활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9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56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