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평안북도 의주(義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15일 최혁호(崔赫昊)·윤창덕(尹昌德)·최상호(崔尙浩)·김사복(金士福)·백금억(白金億)·윤하민(尹河民) 등과 가산면(加山面)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이날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상광동(上廣洞)으로 행진하였다. 그러나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헌병보조원과 순사보가 출동하여 발포하자, 그들에 대항하여 격투를 벌이다가 체포되었으며, 이해 7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소요혐의로 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882·88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