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만주 (滿洲) 장백현 (長白縣) 팔도구 (八道溝) 에 근거 (根據) 를 둔 태극단 (太極團) 에 가입 (加入) 하여 통신사무 (通信事務) 와 군자금 (軍資金) 모집 (募集) 을 위해 활동 (活動) 하다가 일경 (日警) 의 검문 (檢問) 을 당 (當) 하자 발포 (發砲) 하고 피신 (避身) 하였다가 1926년 피체 (被逮) 되어 징역5년을 받아 복역 (服役) 하다가 가출옥 (假出獄) 된 후 (厚) 1928년 4월 조선혁명군 (朝鮮革命軍) 에 입대 (入對) 하여 양대령 (楊臺嶺) 에서 침공 (侵攻) 하는 일군 (日軍) 과 전투 (戰鬪) 하다가 적기 (敵機) 의 폭격 (爆擊) 으로 전사 (戰死)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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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안북도 후창(厚昌) 사람이다.
1920년경부터 중국 팔도구(八道溝)에 근거를 두고 있던 태극단에 가입하여 통신사무와 군자금 모집에 종사하였으며, 1921년에는 함남 후창군 동오면(厚昌郡東奧面)의 한 여관에서 일경의 검문을 받게 되자 발포하여 관통상을 입혔다.
1926년에 체포되어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는 다시 만주로 망명하여 조선혁명군에 가입하였으며, 장백현(長白縣)에서 국내에 입국하다가 일본군과 교전 중 부상하기도 하였다 한다.
1933년에는 조선혁명군대원으로 남만주 일대에서 한·중 연합군 공동작전에 참전하였으며 일군과 교전중 전사 순국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3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71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6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