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20년 6월
3. 1920년 9월 16일
4. 1920년 9월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안주(安州) 사람으로 기독교 장로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상해(上海)의 신한청년단에서 파견되어 온 선우 혁(鮮于爀)의 지시로 양전백(梁甸伯)·이승훈(李昇薰)·길선주(吉善宙)·강찬규(姜燦奎)·안세환(安世桓)·변인서(邊麟瑞)·이덕환(李德煥)·김동원(金東元)·도인권(都寅權)·윤원삼(尹愿三)·윤성운(尹聖運) 등과 함께 3·1운동을 계획하고 이를 실행하였다. 1919년 3월 3일 안주(安州) 만세시위를 선두에서 지휘하다가 일헌병 대장과 격투를 벌여 두부(頭部)에 상처를 입고 만주로 도피하여, 박장호(朴長浩)·전덕원(全德元)·조병준(趙秉準) 등이 중심이 되어 만주 유하현 삼원보(柳河縣三源堡)에 조직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에는 광복군총영이 조직되자 암살대원이 되었으며 이때 미국 하원 동양시찰단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자 광복군 사령부 참모장인 이 탁(李鐸)은 3대의 행동대를 편성하여 국내에 파견하였는데, 그는 김영철(金榮哲)·김최명(金最明) 등과 함께 한조가 되었다. 동년 8월 미국 의원단이 내한하는 기회를 타서 국내에 들어와 일제의 중요기관을 폭파하고 일제 고관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총영장 오동진(吳東振)으로부터 받고 동년 7월 권총과 폭탄 등을 휴대하고 입국하였다. 동년 8월 16일 친일주구인 평북 자성군수(慈城郡守)를 사살하고 또 황해도 장연(長淵)으로 가서 역시 친일파인 그곳 군수를 살해하였다. 이 두 사건으로 일제의 경계가 삼엄해지자, 그는 동지들과 함께 함경도 방면으로 가서 북포(北布) 장사를 가장하고 북포속에 권총과 폭탄을 감추고 짐을 꾸려 갖고 서울로 들어갔다. 그리고 총독부·남대문역·종로경찰서 등을 파괴할 목표를 세우고 8월 21일 중국 요정 아서원에서 김영철·김최명 등과 함께 협의하던 중 일경에 탐지되어 체포되었으며, 징역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고 1927년 9월 21일에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118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6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113·281·45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2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22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34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177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102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02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20면
- 조선민독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1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85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