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함남 (咸南) 갑산지방 (甲山地方) 의 유력자 (有力者) 이며 전 (前) 군수직 (郡守職) 을 역임 (歷任) 하고 지방 (地方) 제1의 자산가 (資産家) 이면서 광복단 (光復團) 설치 (設置) 에 따른 요청 (要請) 을 받자 이에 동의 (同意) 하고 갑산지단 (甲山支團) 의 부단장 (副團長) 과 만주 (滿洲) 장백현 (長白縣) 의 광복단 (光復團) 제2구 (區) 분단장 (分團長) 이 되어 통신원 (通信員) 19명 모험대원 (冒險隊員) 24명 소총 (小銃) 5정 (挺) 권총 (拳銃) 20정 (挺) 을 구입 (購入) 무장 (武裝) 케하여 군인양성 (軍人養成) 과 국권회복 (國權恢復) 을 위해 맹렬 (猛烈) 하게 활동 (活動) 하였으며 1922~1925년경 까지 농민회 (農民會) 를 운영 (運營) 하면서 농업진흥 (農業振興) 과 군자금 (軍資金) 모집 (募集) 을 위해 활동 (活動)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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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함남 갑산(甲山) 사람이다. 그는 1920년 8월 박형렬(朴亨烈)·이치용(李致龍)·박태화(朴泰華) 등과 함께 광복단(光復團) 갑산분단(甲山分團)을 조직하고 부단장으로 활약했다. 광복단은 1920년 김성극(金星極)·홍두식(洪斗植) 등이 주도·조직한 무장투쟁단체로서 만주 안도현(安圖縣)에 본부를 두고 만주와 국내 등지에 분단을 설치하여 군자금 모집 및 선전문 배포활동을 폈다. 그리하여 만주와 국내를 왕복하며 활동하던 그는 1921년 4월 김좌봉(金佐鳳)·김내원(金來源)·이신재(李愼在) 등 12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으며 동년 10월 장백현(長白縣)에 광복단의 지원조직인 농민회(農民會)를 결성하여 광복단의 활동에 필요한 군자금 및 식량 제공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1921년 만주에서 붙잡힌 이후 국내로 이송되어 일경의 감시를 받으며 여생을 지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56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323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100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5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