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3월 만주 (滿洲) 길림성 (吉林省) 관전현 (寬甸縣) 에 본부 (本部) 를 둔 대한독립단 (大韓獨立團) 이 황해도 (黃海道) 해주군 (海州郡) 해주읍내 (海州邑內) 에 동단 (同團) 의 황해도지단 (黃海道支團) 을 조직 (組織) 하자 이에 가입 (加入) 하고 「독립신문 (獨立新聞) 」을 배부 (配付) 하며 민족의식 (民族意識) 을 고취 (鼓吹) 하는 한편 1920. 4. 26(음 (陰) ) 황해도 (黃海道) 은율군 (殷栗郡) 남부면 (南部面) 만화리 (萬和里) 거주 (居住) 김병준 (金秉俊) 으로부터 현금 (現金) 60원 (圓) 과 액면 (額面) 1,000원 상당 (圓相當) 의 어음 (於音) 을 받아내는 등 군자금 모집 활동 (軍資金募集活動) 을 펴다가 일경 (日警) 에게 피체 (被逮) 되어 징역 6년을 받고 옥고 (獄苦) 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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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황해도 해주(海州) 사람이다. 만주 길림성(吉林省) 관전현(寬甸縣)에서 조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박장호(朴長浩) 등이 설립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은 국내 각도·각군·각면에 동지단을 설치하기 위하여 김기한(金起漢)을 황해도 해주로 파견하였다. 이에 그는 정순경(鄭順敬)·변동식(邊東植)·최봉직(崔奉稷)·봉영화(奉永華)·우종린(禹鍾麟)·우석린(禹錫麟)·변동환(邊東煥)·편강열(片康烈)·신현정(申鉉貞) 등과 함께 동단에 가입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20년 4월에는 독립신문을 배부하고, 단원을 모집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황해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그리고 대한독립단의 조직 및 행동을 정한 문서 약 4백 부 및 일본 내에 거주하는 각 계층의 한국인에 대하여 각자 독립단원에게 협력하고 관리는 관직을 버리고 적을 응징하며 국권회복에 노력할 것을 통고하는 문서 약 6백여매를 인쇄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일경에 노출되어 체포되었으며, 1921년 8월 19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범 처벌령, 총포화약류 취체규칙 위반이란 죄명으로 징역 6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14면
- 동아일보(1921. 7. 14, 7. 15, 8. 25, 9. 25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