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2. 26∼28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서 3·1운동 (運動) 1주년 (周年) 을 계기 (契機) 로 학생 (學生) 들의 동맹 휴교 (同盟休校) 와 상인 (商人) 들의 철시 투쟁 (撤市鬪爭) 을 호소 (呼訴) 하는 「대한독립 (大韓獨立) 일주년 기념 축하 (一周年紀念祝賀) 경고문 (警告文) 」 2,300여매 (餘枚) 를 인쇄 (印刷) 한 후 경북 (慶北) 대구 (大邱) 충남 (忠南) 대전 (大田) , 경남 (慶南) 마산 (馬山) 등지에 배부 (配付) 하여 노상 (路上) 에 살포 (撒布) 케 하다가 피체 (被逮) 되어 1920. 12. 21. 징역 1년을 받고 복역 (服役) 중 1921. 2. 8. 병보석 (病保釋) 되었으나 고문 (拷問) 의 여독 (餘毒) 으로 1921. 2. 9. 사망 (死亡)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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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기 고양(高陽) 사람이다. 1919년 2월 이동욱(李東旭) 등과 독립군환영단(獨立軍歡迎團)을 조직하고 상해에 임시정부(臨時政府)가 수립되자 이동녕(李東寧)과 연락을 취하면서 각종 경고문과 반일 유인물을 인쇄하여 비밀리에 국내외에 발송하였다. 1920년 2월에는 3·1독립만세 1주년을 계기로 학생들의 동맹휴교와 상인들의 철시투쟁을 호소하는 〈대한독립 1주년기념 축하경고문(大韓獨立一周年紀念祝賀警告文〉을 작성·인쇄하여 동년 2월 28일 새벽 4시에 유진익(兪鎭翊) 동지를 시켜 이동욱(李東旭)의 집으로 몰래 보내다가 발각되어 붙잡히고 인쇄기구 및 인쇄물을 15,000매를 전부 압수당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동년 12월 22일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21년 2월 8일 병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가혹한 고문의 여독으로 이튿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공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307·30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8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259·26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