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25년 간도 용정(龍井)의 영신중학(永新中學)에서 학생운동에 참가하였고, 간도지방에서 민족학교를 세우고, 『붉은 주먹』이라는 신문을 창간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12월 17일, 용정에 본부를 둔 전간도조선인단체(全間島朝鮮人團體)는 노동학원 강당에서 간도 시민대회를 위한 긴급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오산세는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8년 12월 7일에 코민테른에서 발표한 ‘조선공산당 재건문제에 대한 지령’[12월 테제]에 의하여 윤자영(尹滋英)·김영만(金榮萬)·주종건(朱鍾建)·김철수(金錣洙) 등과 함께 1929년 3월에 만주 돈화에서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어 1929년 10월에 동 준비위원회의 만주부(滿洲部)가 조직되자 고려공산청년회(공청) 만주부 책임자로 선임되어 만주에서 동지 규합과 혁명운동의 통일에 앞장섰다.
이후 오산세는 1930년 10월 전후해서 조선공산당 재건을 목적으로 서울에 와서 11월 26일 ‘조선공산당 재건설정리위원회’를 결성하고, 조직부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1930년 12월 동지들이 체포되면서 조직이 와해되었다.
1931년 3월 오산세는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를 해소하고 ‘좌익노동조합전국평의회 조직준비회’를 결성하여 쟁의부(爭議部) 책임을 맡았다. 1931년 4월 30일을 기해 서울에서 일제히 공장이나 노동자들이 모이는 장소에 격문을 뿌려 메이데이 당일의 운동을 선동하기로 하고 투쟁위원회(조선공산당재건공작위원회)를 조직, 책임비서로 있으면서, 격문 700매를 동지들에게 배부하여 살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931년 4월 22일에 용산경찰서에서 신철(辛鐵)·정종명(鄭鍾鳴)·신경애(申敬愛)·이적효(李赤曉) 등을 검거하여 취조하다가 격문 살포 계획이 드러났다. 사건의 배후가 오산세임이 밝혀졌고, 경찰들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애를 썼다. 5월 3일에 의정부 방면으로 피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용산경찰서에서는 총을 휴대한 무장경관대를 현장으로 출동시켜 추격하였다. 소요산의 한 승방에 숨어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다시 그곳으로 추격하였으나 벌써 그곳을 벗어나서 피신하였다. 그 뒤 다시 함흥 방면으로 피신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갔으나 체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오산세는 결국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투옥 중 1932년 11월 8일 새벽 서대문형무소에서 폐결핵으로 병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革命烈士檔案(渾春縣 民政局, 1957)
- 現代史資料(강덕상) 제29권 295, 296, 299, 315~317, 320, 321, 323~334, 550, 599면
- 韓國共産主義運動史(김준엽·김창순) 제5권 285~311면
- 韓國共産主義運動史(李起夏) 제1권 895~969, 1182면
- 中央日報(1932. 11. 9)
- 東亞日報(1927. 12. 26, 1931. 7. 25, 1933. 4. 28 號外)
- 朝鮮日報(1933. 4. 28 號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