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안성청년회 (安城靑年會) 장으로 있을 때 해아밀사 (海牙密使) 파견 (派遣) 으로 인 (因) 하여 광무황제 (光武皇帝) 가 퇴위 (退位) 하고 일국 (日國) 으로 사과 (謝過) 하기 위하여 간다는 소문 (所聞) 을 듣고 통분 (痛憤) 하여 결사대 (決死隊) 를 조직 (組織) 하고 노상 연설 (路上演說) 을 통 (通) 하여 항일민족의식 (抗日民族意識) 을 고취 (鼓吹) 하며 동지 (同志) 를 규합 (糾合) 하고 친일 단체 (親日團體) 인 일진회 (一進會) 안성사무소 (安城事務所) 를 습격 파괴 (襲擊破壞) 하고 평택역 (平澤驛) 에서 광무황제 (光武皇帝) 의 일국행 (日國行) 을 저지 (沮止) 한다는 계획 (計劃) 을 세우며 활동 (活動) 하다가 일군 (日軍) 에게 피체 (被逮) 되어 사살 (射殺)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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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기 안성(安城) 사람이다.
일제의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와 단발령 강제에 격분하여 일제를 이땅에서 구축하기 위해 1895년 안승우(安承禹)가 이춘영(李春永) 등과 함께 거의(擧義)하자, 그는 충주(忠州)에서 안승우 의진(義陣)에 군량미를 제공하며 의병활동을 도왔다. 1907년 광무황제의 강제퇴위와 함께 광무황제가 해아밀사사건(海牙密使事件)의 사과를 위해 일본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 안성청년회장(安城靑年會長)이었던 그는 김명기(金明起)·임양수(林楊洙) 등과 함께 결사대를 조직하여 일진회(一進會) 안성사무소를 파괴하고 평택에서 열차를 저지시킬 계획을 진행하던 중 붙잡혔다. 붙잡힌 후 친일권고에 불응하며 항일의지를 굽히지 않던 그는 1907년 음력 7월 24일 수원 서문밖에서 총살당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7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권 38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3권 5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