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7649
성명
한자 金盛得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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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일본방면 포상년도 1993 훈격 애족장
1942. 10월부터 일본 명고옥시(名古屋市)에서 노동을 하며 하합고등보습학교 야간부(河合高等補習學校夜間部)에 통학하던 중 일본생활에서 한국인에 대한(大韓) 차별대우를 겪으면서 우리민족의 자유화 행복은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확신하고 그 목적달성을 위해 동지 3(人)과 함께 와룡회(臥龍會)를 결성하여 1943. 7월까지 여러 차례의 모임을 갖고 민족독립의식을 고취하며 활동(活動)하다 피체(被逮)되어 징역 2년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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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남 김해(金海) 사람이다.

1942년 10월부터 일본 명고옥시(名古屋市)에서 노동을 하며 하합고등보습학교(河合高等補習學校) 야간부(夜間部)에 재학하던 중 항일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의하였다. 곧 일본에서 생활하는 한인이 받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고통과 차별을 목도하고, 한민족의 진정한 자유와 참된 행복은 오로지 독립국가 건설에 있음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해 동지 3인과 함께 비밀결사인 「와룡회(臥龍會)」를 결성, 조직적인 항일투쟁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 뒤 1943년 7월까지 여러 차례 비밀 회합을 갖고 민족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히고 말았다.

이로 인해 1944년 7월 29일 명고옥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44. 7. 29 명고옥지방재판소)
  • 소화특고탄압사(명석박륭) 제8권 161∼165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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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성득 금원초웅(金原初雄) 경상남도 김해(金海) -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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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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